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부심벨 대신전 (문단 편집) == 이전 == 20세기 중반에 이집트 공화국을 건국한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아스완 하이 댐'을 지으며 상황이 급변했다. 이집트 정부가 나일 강 상류에 거대한 댐을 짓자, 점차 물이 차오르면서 나일 강변에 위치하던 아부심벨 신전이 침수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1959년에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초대형 규모의 문화재 보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아부심벨 신전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전문가들은 아부심벨 주위에 소규모 방파제를 지어 아예 통째로 격리하거나, 거대한 돔을 지어 수중에서 보존하는 방안 등 여러 대책들을 제시했으나 예산상의 문제로 결국 암벽을 포함한 신전 전체를 뜯어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는 안이 채택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아부심벨 신전 공사4.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아부심벨 신전 공사8.jp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eandt.theiet.org/640_abu-simbel-t.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아부심벨 신전 공사18.jpg|width=100%]]}}}|| ||<-2> '''공사 당시 사진들''' || 1964년에 아부심벨 신전을 해체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당시 기준으로 4천 2백만 달러, 2017년 기준으로는 3억 달러, 한화로는 3,6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아부심벨 신전을 뜯어 위쪽의 고지대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고고학자들은 신전을 포함한 암벽 전체를 평균 20톤에 달하는 거대한 돌덩어리들로 조각조각 잘라냈다. 이렇게 신전을 해체한 후에는 강에서 200m 정도 더 떨어지고 고도 상으로는 65m 정도 더 높은 고지대에서 다시 신전을 조립했다. 물론 모든 유적들을 모조리 해체해 옮기지는 못했기에 일부 유적은 나일 강 속에 수몰되었지만, 아부심벨 신전을 포함한 핵심 유적들은 모두 안전히 이동했다고 한다. 아부심벨을 자세히 보면 공사 당시 신전을 분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1967년 신전을 언덕 지형으로 이전하면서 신전이 매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언덕과 언덕 내부 사이에 대형 [[돔]]을 설치하였다. 신전 오른쪽에 돔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 이 곳으로 들어가면 신전이 콘크리트 돔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천년의 시대를 사이에 두고 세워진 고대와 현대의 건축 양식이 공존하고 있는 기묘한 모습이다. 실제로 방문해 보면 아스완 댐으로 생겨난 나세르 호 위쪽 언덕 평평한 곳에 [[https://simple.wikipedia.org/wiki/Abu_Simbel_temples#/media/File:Panorama_Abu_Simbel_crop.jpg|#이런 모양]]으로 재조립해놓았기 때문에, 협곡 사이의 웅장한 모습을 기대하고 갔다간 예상과 다른 모습에 살짝 당황할 수도 있다. 워낙 좌상 크기가 커서 압도되긴 하지만. 이를테면 해체 후 관광을 위해 재조립해놓은 [[무령왕릉]]이나 [[천마총]]이 엄청나게 사이즈를 키운 느낌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덴두르 신전 1850년 4월 7일.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덴두르 신전 1860년대.jpg|width=100%]]}}} || ||<:>1850년 덴두르 신전||<:>1860년대 덴두르 신전||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덴두르 신전 1974년.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덴두르 신전.jpg|width=100%]]}}}|| ||<:>1974년 조각난 덴두르 신전||<:>현재 덴두르 신전|| 아스완 하이 댐을 건설할 당시 초기에는 [[미국]]이 자금 지원을 하였지만 나세르가 [[아랍 사회주의]]를 주장하자 미국이 자금 지원을 중단하였다. 하지만 이집트와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아부심벨 대신전을 이전할 당시 [[미국]]이 특히 많은 지원을 하였고,이집트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있었던 덴두르 신전을 미국에 기증하였다. 미국은 이 신전을 분할하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부로 이전하여 다시 조립하여 전시 중이다.[* 덴두르 신전은 기원전 15년에 건설되었다. 이 신전은 역사상 최초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해외로 반출된 이집트의 문화재 중 하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입수한 유물들만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다른 서방국들 역시 이 사업을 지원하였고 마찬가지로 이집트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 수몰될 위기에 있던 다른 중고대 신전들을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서독]] 정부에 기증하였다. * [[https://en.m.wikipedia.org/wiki/Temple_of_Debod|데보드 신전]]: 스페인 [[마드리드]] 소재. * [[https://en.m.wikipedia.org/wiki/Temple_of_Taffeh|타파 신전]]: 네덜란드 레이던 소재. * [[https://en.m.wikipedia.org/wiki/Temple_of_Ellesyia|엘리시아 신전]]: 이탈리아 [[토리노]] 소재. * [[https://en.m.wikipedia.org/wiki/Temple_of_Kalabsha|칼랍샤 신전의 대문]]: 독일 [[베를린]] 소재.[* 통째로 옮겨진 다른 신전들과 달리 이 신전의 경우 규모가 워낙 커서 독일이 대문만 가져갔다.] 사실 서방국들에 증여한 신전들의 경우 아스완 댐이 건설되면 아부심벨 대신전과 같이 수몰될 운명이었다. 그래서 수몰되는 것보다는 타지에서라도 보존되는 것이 더 나았다. 어차피 비교적 가치가 떨어지는(?) 소규모 신전이라 이집트 정부 입장에서는 크게 아쉬울 것이 없었다. [[대한민국]]도 아부심벨 대신전 이전을 위하여 1만 달러를 지원하였고, 1963년 10월 1일에는 3원, 4원권의 누비아 유적 보호운동 [[기념우표]]를 발행하여 그 수익금의 일부를 유네스코에 기부하였다. 아부심벨 대신전 이전 사업을 계기로 1972년에는 [[세계유산|세계문화유산협약]]이 생겨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